런던·뉴욕 200년 독점 깨진다 — 홍콩·싱가포르, 아시아 금 허브 양강 경쟁 개막

세계 금 수요의 70%를 차지하는 아시아가 드디어 가격 결정권에 도전합니다. 홍콩은 7월 런던식 금 중앙결제 시스템을 출시하고, 싱가포르도 6대 글로벌 은행과 손잡고 맞불을 놓았습니다. 동방으로 이동하는 금 패권, 그 의미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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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가 금을 가장 많이 사는데, 가격은 왜 서방이 정할까?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모순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 금 수요의 약 70%는 아시아에서 발생합니다. 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막대한 실물 금 수요가 존재하지만, 정작 국제 금 가격은 런던과 뉴욕 시장이 결정해 왔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아시아에는 런던이나 뉴욕처럼 글로벌 자금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대형 금 결제 인프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시아 거래 시간에는 유동성이 부족해 대규모 거래가 쉽지 않았고, 기관투자자와 중앙은행들은 결국 런던과 뉴욕 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구조는 약 200년 동안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시아의 두 금융 허브가 이 오래된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홍콩의 승부수 – 런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오다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홍콩입니다.

홍콩 정부는 오는 7월 새로운 금 중앙결제 시스템을 출범시킬 예정입니다.

눈길을 끄는 점은 세계 최대 귀금속 시장인 런던의 운영 방식을 거의 그대로 도입했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미지정 계좌(Unallocated Account)’ 시스템입니다.

이는 투자자가 특정 일련번호가 있는 금괴를 직접 보유하는 대신, 일정 수량의 금에 대한 권리를 보유하는 방식입니다.

이 구조에서는 실물 금괴를 일일이 지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거래 속도가 훨씬 빠르고 대규모 결제가 가능합니다.

현재 런던 귀금속 시장 역시 대부분 이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중국 본토와 연결되는 거대한 그림

홍콩의 계획은 단순한 결제 시스템 구축에 그치지 않습니다.

상하이황금거래소를 비롯해 규제기관과 국제은행 등 11개 기관이 ‘홍콩귀금속중앙결제공사(PMCC)’ 운영에 참여합니다.

또한 중국과 우호적인 여러 국가의 중앙은행도 시스템 참여 대상으로 초청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중국 본토 금 시장과 글로벌 시장을 연결하는 새로운 허브를 만들겠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싱가포르의 반격- 글로벌 은행들과 손잡다

홍콩이 먼저 움직이자 싱가포르도 곧바로 대응에 나섰습니다.

6월 15일, 간킴용 부총리는 아시아 금 허브 구축을 위한 대규모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습니다.

싱가포르거래소(SGX)는 2026년 말까지 장외거래(OTC) 금 결제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여기에는 DBS, 도이체방크, ICBC 스탠다드, JP모건, OCBC, UOB 등 6개 글로벌 금융기관이 결제 회원으로 참여합니다.

은행 간 거래는 202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입니다.

중앙은행 자금까지 끌어들이는 전략

싱가포르는 결제 시스템 구축에만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10월까지 중앙은행 전용 금 보관 서비스를 도입해 각국 중앙은행과 국부펀드가 금 준비금을 보관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또한 실물 귀금속 투자 비중을 제한하던 5% 규정을 폐지해 펀드와 패밀리오피스가 금 투자 비중을 더욱 확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같은 목표, 다른 전략

홍콩과 싱가포르는 모두 아시아 금 허브를 목표로 하지만 접근 방식은 다릅니다.

홍콩은 중국 본토와의 연계를 강화하며 빠른 출시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반면 싱가포르는 글로벌 금융기관과 국제 자본을 중심으로 보다 중립적인 금융 허브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홍콩은 ‘속도’와 ‘중국 시장’을 무기로 삼고 있고,

싱가포르는 ‘국제 금융 네트워크’와 ‘신뢰성’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진짜 의미는 따로 있다- 금 가격 결정권의 이동

이번 경쟁의 본질은 단순한 도시 간 경쟁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200년 가까이 런던과 뉴욕이 독점해온 금 가격 결정 구조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시아가 소비만 하는 시장이 아니라 가격 결정에도 참여하려는 단계로 진입한 것입니다.

동방으로 이동하는 금 패권

이 변화는 우연히 나타난 현상이 아닙니다.

중국 인민은행의 지속적인 금 매입, 중앙은행들의 탈달러화 움직임, 그리고 아시아 전역의 금 보관 및 결제 인프라 확장이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서방은 종이 금 시장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동방은 실물 금을 확보하고 이를 뒷받침할 거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진짜 핵심

이번 뉴스에서 중요한 것은 결제 시스템 출범 자체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실제 금이 어디로 이동하는가입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단순히 거래 플랫폼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중앙은행, 국부펀드, 글로벌 금융기관의 금을 유치하려 하고 있습니다. 만약 향후 런던에 보관되던 금이 홍콩과 싱가포르로 이동하고, 아시아 거래량과 재고가 꾸준히 증가한다면 금 시장의 무게중심이 동방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홍콩은 상하이금거래소와 연결되어 있고, 싱가포르는 6개 글로벌 은행이 참여하고 있어 앞으로 실제 금 보관량과 거래 규모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 — 실물 금 투자자에게 호재일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현재로서는 장기적 호재에 가깝다고 판단됩니다.

물론 홍콩이 런던식 미지정 계좌 방식을 도입한다는 점은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실물보다 훨씬 많은 계약이 만들어진다면 또 하나의 종이 금 시장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움직임의 핵심은 종이 거래 확대보다 아시아가 금 거래·보관·결제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아시아가 세계 금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도 가격 결정권은 런던과 뉴욕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경쟁은 이러한 구조를 바꾸려는 첫 번째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물 금 투자자 입장에서는 단기 가격 변동보다, 아시아의 실물 금 재고와 중앙은행 금 보관 규모가 실제로 증가하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이 흐름이 이어진다면 이번 뉴스는 단순한 금융 인프라 구축이 아니라, 200년 동안 이어져 온 런던·뉴욕 중심의 금 시장 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한 신호로 평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200년 동안 유지되어 온 런던·뉴욕 중심의 금 시장 구조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는 초기 단계를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